제물마련

고담 노중평 (역사천문학회 회장, 상고연구가, 민속연구가)
노 : 지나간 세월 가난한 시절에 농촌에서 제물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말씀 해 주시지요.

김 : 돼지를 2마리 길렀습니다. 돼지 한 마리는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길렀고, 다른 돼지 한 마리는 굿 비용으로 쓰기 위하여 길렀습니다. 제물로 지정이 된 돼지는 구정물만 먹여도 잘 자랐습니다. 1년 자랄 것이 6개월이면 다 자랐으니까요. 몸도 2배나 켰고요. 굿하는 날 돼지를 잡습니다. 돼지를 잡을 때, 돼지를 잡는 사람이 콩팥을 띄어 날로 먹었어요. 간을 잘라 먹기도 했지요. 돼지머리를 포함해서 절반을 익히고 절반을 생으로 제물로 썼습니다. 사슬을 세우는 데 아무데나 세워도 소금만 찔러 넣어주면 잘 섰어요. 요즈음은 삼지창을 써서 세우지만, 그때는 삼지창이 없었습니다. 돼지우리에서 짚을 걷어내는 쇠스랑을 가져다 썼어요. 그런데 사슬이 서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무당이 영검해서 막 호통을 칩니다. 신에게 바칠 제물에서 잘라 먹은 콩팥이며 간이며 다 가져다 놓으라고 말입니다. 콩팥이며 간이며 잘라 먹은 사내들이 벌벌 떨며 굿상 앞에 와서 잘못했다고 빌었어요. 그러면 쇠스랑 자루 밑에다 소금을 괴어주고 사슬을 다시 세웁니다. 그제서 사슬이 섰어요. 굿이 끝나고 신에게 바친 돼지 한 마리와 굿 비용으로 쓴 돼지 한 마리를 다시 기르기 시작하면 다른 돼지들과 같이 잘 커 주었어요. 이러니 신이 없다고 말할 수 없지요.

노 : 제가 잘 아는 어느 분이 제가祭家를 대신해서 제사 지내주는 날, 곁에서 제사 지내는 광경을 본적이 있는데, 당주 무당이 상에 돼지 머리 2개를 올렸습니다. 왜 돼지머리 2개를 올렸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그때의 의문이 풀렸습니다.

군웅의 기원 (巫字의 기원)

노 : 혹시 군웅軍雄거리나 무자巫字의 기원에 대하여 아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김 : 제가 어려서 신어머니(김용애 만신)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신어머니가 이렇게 대답해 주셨어요. 사신이 먹을 것이 없어서 짐승을 잡아먹기로 하였는데, 잡은 짐승을 올려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기로 하였답니다. 잡기 위하여 거론하게 된 짐승이, 소, 말, 돼지, 개, 닭, 5 종류였다고 합니다. 막상 잡으려니, 떤 짐승을 잡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짐승들이 인간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따져 보아서, 인간을 위해서 별로 하는 일이 없는 짐승을 잡기로 하였답니다.

먼저 소를 보니, 소는 농사를 지어 주고 물자와 사람을 수레 위에 태워 날라주니 죽여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외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음엔 말을 보니, 말은 이들 짐승 중에서 가장 빠르고, 전쟁터에 없으면 전쟁에 지장을 주는 짐승이라 말도 제외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다음엔 개를 보니, 개는 인간을 지켜주는 개라 이 또한 없앨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외하기로 하였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닭과 돼지뿐인 데, 닭은 시간을 알려주는 동물이라 잡아먹을 수 없어서 또 제외하기로 하였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돼지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돼지는 먹기만 하고 인간을 위하여 하는 일이 아무 것이 없는 듯하여, 돼지를 잡기로 하였답니다. 돼지를 잡아서 제물을 올리는데, 6각으로 각을 뜨거나, 8각으로 각을 떠서 제단에 올렸다고 합니다.


노 : 청동기시대에 만든 제기에 보면, 상고시대의 문자인 금문金文으로 무巫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설문해자>나 <강희자전>에 나오는 무자에 대한 설명에, 자전을 만든 그 시대 사람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데, 천지인天地人과 무무巫舞와 무격巫覡이 혼합된 의미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을 보면, 짐승을 잡기 직전의 상황을 포착하여 새겨 넣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굿의 군웅거리나, 타살거리의 한 장면을 그대로 제기에 새겨 넣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